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비방한 이유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주님 발 앞에 앉아 귀한 향유를 부어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은 유명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얼핏 보면 주님께서 마치 나사로의 집에 오신 것처럼 느껴지지만, 마태나 마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이 집이 문둥이 시몬의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운 친척인 시몬이 잔치를 배설한 장면인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 집에서 예수님께 드린 향유는 당시 아주 비싼 것으로서 그 가치가 삼백 데나리온 정도입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의 가치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까 삼백 데나리온이란 거의 1년치 봉급에 해당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가장 비싼 향유를 부어서 가장 소중한 머리털로 예수님께 복종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가룟 유다가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 하였느냐”(요 12:5).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이 책망에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유다가 보기에 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버리는 것은 엄청난 낭비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밖에는 가난한 자들이 많이 있기에 그 향유를 예수님 발에다 버릴 바에야 오히려 가룟 유다에게 맡겨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언뜻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 그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 12:6). 성경은 유다가 겉으로는 정의로운 것 같이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돈을 많이 도적질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자기 궤에 넣어서 자기가 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하였을까요?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렇게 소중한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자로서 삼년 가까이 따라 다녔지만, 그의 마음이 예수님을 존경하며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신선하고 또 많은 능력이 나타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보다 보니까 예수님이 꽉 막힌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든지 사람들의 인기를 누리며 돈도 벌고 잘 사실 수 있는데도 그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이 되고 정치적 왕국을 이룰 줄 알았는데 점점 보니까 그런 꿈은 요원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면서 실망하게 되니까 무엇 때문에 마리아가 이런 분에게 향유를 허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유다의 책망의 말 속에는 “예수님이 도대체 뭐나 된다고, 왕에게나 바치는 이런 비싼 향유를 바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있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것은 유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녀도 진정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또 사람의 영혼과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합니다. 실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룟 유대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모르면 이처럼 주님과 교회에 대한 헌신을 이렇게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마리아는 어떻게 이런 헌신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평소에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다니에 자주 오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 듣고 죄사함의 은총도 받았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자기 오빠인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는 큰 은혜도 체험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이런 은혜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다시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 나니까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엄청나게 비싼 것으로 보였지만, 마리아에겐 전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주 아깝고 낭비같이 여겨졌지만, 마리아에게는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이 먼저 하나님 은혜를 충만히 받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맛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봉사하거나 기도하거나 헌금하는 것을 볼 때 모든 것이 다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모르면 모든 것이 아까워보이고, 지나쳐 보이고,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나 돈 낭비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했고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헌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은혜의 문제입니다. 헌신은 말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또 헌신은 은혜가 없이는 안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마리아처럼 뜨겁게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사랑하여 더 열심히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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