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살아있게 하라 (Let Your Emotions Be Alive)

사람은 감정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나 상처로 마음이 눌려 있게 되면 감정도 약해지거나 죽어가게 됩니다. 기쁠 땐 기쁘고 슬픈 때엔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즐거움의 감정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형통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기뻐하라고 명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 즐거워할 때에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 영원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거하는 자로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계 12:12). 자신에게 주어진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도 반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나의 즐거움으로,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시기하지 말고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명하십니다(사 66:10). 다른 사람의 기쁨을 시기하게 되면 마음도 몸도 썩게 됩니다(잠 14:30).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보게 되면 그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있는지 아니면 시기와 미움이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법궤를 들여오면서 기뻐하였던 남편 다윗 왕의 즐거움에 함께 동참하지 못하고 업신여겼던 미갈은 평생 자식을 낳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삼하 6: 23).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즐거움과 기쁨을 위하여 사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요 15:11).

우리는 타인과 슬픔의 감정도 통하게 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웃을 일도 있지만 울게 될 일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 우는 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혼자 울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울어야할 일이 있을 때는 그냥 같이 울어만 주어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옛날 장례식장에서 곡하는 자들 고용하여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손잡고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욥은 너무나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였는데 욥의 친구들은 와서 진심으로 울어주지 못하고 말을 많이 하면서 판단도 많이 하였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위로와 사랑 결핍증이라고 하면서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내 맘에 넘쳐야 나도 다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3). 하나님은 우리가 위로를 받고 또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고 명하십니다. 위로가 있는 교회에는 부흥의 역사도 일어납니다(행 9:31). 성도들도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 보면 두기고와 오네시모와 아리스다고 등은 사도 바울에게 아주 큰 위로와 힘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골 4:7-10).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감정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함께 울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사랑의 감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흐를 때 우린 그 사랑으로 인하여 이웃에 대하여도 여유가 있고 넓은 마음으로 대하고 품어줄 수 있습니다. 중보 기도 사역이나 예언 사역이나 전도 사역 등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이 통할 때에 효과적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의미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신앙 생활이란 주님과의 연애”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과부 안나가 나오는데 과부가 된지 84년이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안나는 세상적으로는 과부였지만, 영적으로는 과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최고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아름다운 신부였습니다. 우리도 최고의 애인이자 신랑이신 주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과 감정을 다하여 경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요 이웃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려면 하나님과 나의 감정의 교류가 솔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나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브로커이십니다.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뚫어주고 사랑의 감정을 지속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를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말하는데 영어 성경에는 위로자, 즉 comforter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Comfort는 Com(함께) + Fort(힘)의 합성어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위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말합니다(고전 2:10).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사정과 감정을 다 아시기에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계속 느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성령을 기름으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기름을 상처에 바르면 고통이 멎고 회복이 빠릅니다. 성령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 마음의 상처를 없애 주시고 빨리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메마른 감정이 살아나게 되고 인생의 살 맛과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인간의 감정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대로 우리의 감정이 건강해지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과 지속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넘침으로써 우리 이웃과도 감정이 통하는 사람으로 쓰임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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