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져야 큰 사람이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바울의 서신서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점은 교회 내에서 어떤 사람의 죄가 밝혀졌을 때 드러나게 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갈 6:1). 율법주의는 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 사람과 교류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죄의 원인을 진단하지만 죄인인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서의 죄란 사회에서 저지른 악행이라기보다는 교회 내에서 나타나는 육체의 일들의 열매를 의미합니다(갈 5:19-21). 상대방도 죄책감 때문에 괴로운데 그 사람을 정죄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거나 세상으로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율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복음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함께 져주는 것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회개하게 하고 다시 용기를 내어서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한자는 어떤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든 글자인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사람 인(人)은 남자와 여자를 형상화하였고, 남자를 여자가 받쳐 주는 모습이 될 때에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한자의 뜻풀이 중에 ‘클 대’(大)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크다”는 뜻의 글자를 만들고자 하는데,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모였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권력이 강하면 큰 사람인가? 아들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의논을 거듭한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렸는 데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크다”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등에 가로로 짐(一)을 올려놓고 이를 “크다(大)”는 뜻이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의 연약한 자들의 짐을 대신 져주고 또 도와줄 때 우리는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긍휼과 섬김과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성경과 기독교 복음의 핵심 정신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느니라”(갈 5:14)고 말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100km 행군 훈련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군화, 총, 더블백 등 완전 군장을 하면 그 무게가 48kg 정도 되었는데 요새는 신소재를 사용하여 38kg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행군을 하다가 보면 꼭 낙오하거나 처지는 군인이 나오는데 그 때에 나도 힘든 처지이기 하지만 전우를 위하여 대신 총을 메주기도 하고 군장을 나누어지기도 하고 부축하여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함께 고난을 겪고 또 함께 돕게 될 때 진짜 전우애가 싹트게 되고 강한 군대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님 말씀의 훈련소요 영적인 군대와 같습니다. 육체의 일에 젖어 있던 주위 성도가 하루 아침에 그 모든 것을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니까 성숙한 성도가 옆에서 지탱하고 도와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動詞)입니다.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인도의 선다 싱(Sundar Singh: 1889~1929)이 어느 추운 겨울 날 동료 수도사와 함께 산을 넘어 수도원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에 한 사람이 병들어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함께 가던 수도사가 “우리도 힘들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갑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다 싱은 “하나님께서 나로 이 길을 지나가게 하신 것은 저 사람을 도우라고 하는 부르심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고 갔습니다. 죽을 고생을 다해 수도원 가까이 왔는데 무엇인가가 발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보니까 앞서 갔던 동료 수도사였습니다. 혼자 가다가 너무 추운 나머지 얼어 죽었던 것입니다. 그 후 선다 싱은 사람들로부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 전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명의 짐을 회피해선 안됩니다. 그 짐이 때로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는 것은 다 된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물이 있고 부족해도 받아주고 격려해주고 세워주는 것, 그럼으로써 완전한 인격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요 사랑의 법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병이나 죄라 하더라도 교회 안의 진리의 말씀과 진실된 교제를 통하여 치료가 가능합니다. 우리가 져야 할 짐이 버겁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이 도와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 68:19). 여러분의 짐이 무겁다고 생각할 때마다 구원의 주님을 찬송하며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져줄 수 있어야 영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실수하거나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가 영성의 수준과 칼라를 보여줄 것입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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