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의 양자이다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자기들이 믿는 신(神-god)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감히 인간이 그랬다간 아주 불경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유대인들조차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은 기도를 어떻게 시작합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이처럼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내는 것얼마나 큰 은혜와 권능인 줄 실감하시는지요?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양자가 되면 먼저 과거의 습관과 환경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옛날 상민의 가정에서 예쁜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이 여성이 너무 이쁘니까 양반집 아들이 흠모하였습니다. 아들이 막무가내로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할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친정 어머니는 딸이 규율이 엄격한 양반 잡에서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코치를 하였습니다: “얘야, 양반이라는게 별거 아니다 그저 말 끝에다가 님 자만 붙이면 된단다. 그저 시아버님, 시어머님 하고 님 자만 붙이면 되는거야.” 그래서 상민집 딸은 간단하게 생각하고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시아버지가 문턱을 베개로 베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점심 상을 차려가지고 들어가면서 “시아버님…”하고 불렀는데 거기까지는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발님 들어갑니다. 대가리님 치우세요”하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새로운 문화와 법도를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딸이 언제까지 상민 집의 언어와 문화와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빨리 양반집의 언어와 예절과 문화를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롬 13:12),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노와 험담과 거짓말 등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골 3:5-9).

양자가 되면 현재 삶의 양식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부모의 생활 방식을 따라가야 하고 새 부모 하에서 자녀로서의 모든 법적인 책임과 권한을 진짜 자식들과 똑같이 갖게 됩니다. 로마 시대 때 네로 황제는 원래 노예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양자가 된 후에 나중에 왕까지 되어서 왕의 권세로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배우 캐서린 헤이글이 한국인 딸을 입양한 후 그 딸을 주인공으로 하여 뮤직 비디오까지 만든 적이 있습니다. 캐서린 헤이글은 자신의 입양한 딸 때문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다가 영어의 발음과 비슷하게 자신의 한글 이름을 김서린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누군가의 양자가 된다는 것은 신분과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자가 되면 양자의 권세가 있으며 또 양자로서 합당한 삶을 요구받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성도는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양자가 되면 또 자신에게 상속될 미래의 기업이 있습니다. 그 기업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롬 8:23-25). 이집트 왕 쿠프는 길이가 230m나 되는 피라미드를 쌓았습니다. 10만 명의 노예가 30년 동안 7Km나 떨어진 곳에서 2.5t짜리 돌을 날라와서 쌓았다고 하니, 이 무덤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에 깔려 희생되었겠습니까? 이 땅의 인생을 의지하는 사람은 이집트 왕처럼 자기 이름과 무덤을 이 땅에 보존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업은 하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덤에는 평안과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들이 영원히 살게 될 하늘나라에는 무한한 축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화상을 가지고 자녀답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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