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라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학개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성전의 건축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성전 건축에 대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학개 2:10-19). 이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와 상통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9).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개는 은연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건축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동적으로 거룩하게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대답은 아니오 라는 것입니다.

학개는 제물의 비유를 들어서 제사장들에게 질문하면서 거룩함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학개 2:11-14). 즉 거룩한 고기가 다른 떡이나 국이나 포도주나 기름 등 다른 식물에 접촉하게 되면 다른 것들도 저절로 거룩하게 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아니다”고 유권해석을 내립니다. 그러면 반대로 부정한 시체를 접촉한 자가 앞에 나열된 것들을 만지면 부정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부정해진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은 자동적으로 거룩함이 전달되지 않고, 반대로 부정한 것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내가 목욕을 하고 왔다고 해서 만지는 사람마다 깨끗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만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쓴 사람이 여러분을 만지면 더러워지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아내가 잘 믿는다고 같이 사는 남편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실제로 선(goodness)은 배우기 어렵고, 악(evil)은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행해집니다. 채소는 키우기 어렵고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잘 나는 것과 같습니다.

학개의 말씀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은 성전이 웅장하고 멋있고 거룩하다고 해서 바로 그 속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해지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전 안에 들어 왔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지었다면 그것은 큰 오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물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제물을 거룩하게 합니다. 저는 영국에서 유학할 때 유럽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교회 성전과 성당들을 많이 본 적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오랜 정성을 들여 그 예배당을 지었고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배당에 사람들도 많이 없고 유럽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많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의 외관은 웅장하지만 영성과 열정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의 마음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그 손으로 드리는 예물도 부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습관이 우리를 거룩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우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요엘 2:13). 우리가 과거에 부정한 삶을 살던 때에 하나님께 받은 징계를 기억해야 합니다(학개 2:15,18).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학개를 통한 예언의 메시지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23). 여러분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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