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를 어깨로 메고 마음에 모시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국보 1호가 바로 하나님의 법궤(the ark of God)였습니다. 법궤는 아카시아 가시 나무인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에 순금으로 씌었습니다(출 37:1-2). 법궤 안에는 십계명을 새긴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결정적인 사건에는 항상 법궤가 등장했습니다. 법궤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출 25:22), 광야 생활도 법궤를 통해서 인도를 받았습니다(민 10:33). 법궤는 전쟁에서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민 10:35).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을 먼저 밟자 요단강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수 3:6-16).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성 주위를 먼저 돌며 양각 나팔을 불렀습니다(수 6:12-13). 그러다가 제사장 엘리 때에 불레셋과 싸울 때 법궤를 빼앗겼습니다(삼상 4:11). 불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가져가자 그들의 다손 신상이 파괴가 되고 악한 피부병과 재앙이 덤치게 되었습니다(삼상 5장). 그러다가 결국 법궤는 기럇여아림의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다 모시게 되었습니다(삼상 7:1).

이 법궤는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돌려보낼 때부터 약 70년 간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왕이 되자 수도 예루살렘으로 그 법궤를 운반하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성대하게 모셔 오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 중에 “법궤 운반 위원회”의 위원 3만 명을 백성 중에서 뽑아 구성하였습니다(삼하 6:1). 그리고 최고급 수레를 준비하여 법궤를 싣고 나왔습니다(삼하 6:3). 왕과 온 족속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퍼레이드를 하였습니다(삼하 6:4-5). 그런데 여기에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웅장한 관현악 소리에 놀랐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소를 흥분하게 만들었는지, 법궤 수레를 이끄는 소들이 막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법궤가 떨어지려고 하자 소를 몰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그만 손을 펴서 법궤를 붙들었는데 즉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삼하 6:7).

법궤는 하나님 임재의 가시적인 상징물입니다(삼하 6:2).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게 됩니다. 이 법궤 운반식은 대단한 국가적 행사였는데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운반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 보면 법궤는 반드시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만이 취급할 수 있었는데 운반할 때 어깨에 매고 운반하도록 하셨습니다(민 4:15). 그리고 심지어 고핫 자손이라도 법궤를 만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 37:5). 또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로서 거룩한 것이니 아무도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민 4:20). 만약 이런 규율을 어기면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다는 들뜬 마음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한다는 미명 하에서 최고급 수레를 만들고 화려한 법궤 운반식을 통하여 자신과 왕국의 위엄을 드러내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생각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대로 하나님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됩니다(신 4:2).

웃사가 죽게 된 이유도 법궤 운반 책임자로서의 우쭐한 마음에서 방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민 4:15). 성경은 하나님께서 웃사와 충돌하였다고 말하는데(삼하 6:8), 하나님과 충돌하여 이기거나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계명과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명을 잃어버리고 저주가 임하게 됩니다(호 4:6). 아무리 힘들어도 법궤는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법궤 신앙이란 하나님 말씀을 경외함으로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의 집입니다. 아무리 수만 명의 교인들이 많이 모이고 아무리 멋있는 악기와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 해도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게 됩니다. 법궤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갔고 하나님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하 6:10-11). 지금 법궤로 인하여 사람이 즉사하는 사고가 난 마당에 누가 법궤를 모셔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벧에돔은 기쁨으로 법궤를 모셔들였습니다. 그러자 오벧에돔은 물질과 사명과 자손의 소문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삼하 6:12).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노략질을 당하거나 불에 탔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오늘날 법궤는 존재하지 않지만 법궤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렘 3:16).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이시며, 부활과 생명이 되시며, 우리 영혼의 만나가 되심으로 진정한 법궤이십니다(히 9장).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 안에 지어지게 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엡 2:22).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과 임재는 예수님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요 1:14). 누구든지 참 법궤이신 예수님을 마음 중심으로 모시게 되면 오벧에돔처럼 큰 복을 받습니다. 죄사함의 복, 물질의 복, 사명의 복, 후손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강의 복과 기쁨의 복과 구원과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에게 있어서는 법궤를 모시는 그 기간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법궤를 어깨에 메어 말씀에 순종하고 법궤를 마음 중심에 모셔 예수님을 사랑하면 최고의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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