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라 (Act in Line with the Truth of the Gospel)

크리스천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진짜 크리스천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 따라 행동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에게 면책을 당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갈 2:11-14).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오게 되자 그 식사 자리를 피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별것도 아닌 행동으로 비췰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복음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 비복음적 행동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 식사 교제를 해도 된다는 계시를 최초로 받은 사도였습니다(행 10:15-16).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난 것이 주후 약 40년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주후 50년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도 이방인들에게 유대의 음식이나 할례와 같은 율법의 규정을 부과하지 말 것을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에 대한 면책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주후 56년경이니까 그 때는 아무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식탁 교제를 비난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에 대한 비난이 두렵고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인정을 더 의식한 나머지 외식적인 행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미 복음 안에서는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으며 주님께서 주신 계시대로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갈 2:16). 그런데 중요한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하는 행동을 하고 바나바 등 다른 지도자들도 동조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시 분리되고 교회가 분열하며 기독교 복음이 변질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갈 2:13). 그래서 바울은 강력한 어조로 책망하였으며 인간의 의로움과 구원은 율법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입니다. 만약 바울의 이런 순수한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되었을 것이며 교회는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이 기독교의 정통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하려고 하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복음에다가 율법을 더하면 율법주의, 체험을 더하면 신비주의, 이성이나 지혜를 더하면 자유주의, 또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과 율법을 혼합시키면 혼합주의가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른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성도들은 그 안에 자신의 옛 자아가 죽고 오직 주님만이 살게 됩니다(갈 2:20). 그러므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단지 아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알고 전파하던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그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갈 2:14).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식사의 자리에서였습니다. 베드로가 할례주의자들의 눈이 두려워서 식사 자리를 떠났을 때 함께 식사를 하던 이방인들의 기분이 어떠하였을까요? 아마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식사도 복음적인 식사가 있고 반복음적인 식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식사하면서 사람을 차별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식사하는 것, 이런 것은 복음적인 식사가 아닙니다. 옷에도 복음적인 의상이 있고 비복음적인 의상이 있습니다.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덕이 되지 못하는 의상은 비복음적인 옷입니다. 우리는 옷도 복음적으로 입어야 합니다.

취미나 습관도 복음적이어야 하며 우리의 대화도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성도가 말만 했다 하면 죽겠다는 부정적인 소리나 하고 남 험담이나 한한다면 이건 복음적인 말이나 대화가 아닙니다. 또 입만 열었다 하면 자기 자랑을 하는 것도 복음적인 말이 아닙니다. 내가 오직 값없이 은혜로만 구원받은 것을 알고 믿는 자만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도 복음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분파나 분쟁이 일어날 수 있고 육체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고전 3:3-4).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절대 되어선 안됩니다(갈 3:3). 오직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 사심을 믿고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예수님의 은혜와 향기를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진짜 크리스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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