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란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고전 13:7). 믿음이 있어야만 희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성자라 불렸던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만난 후 빈민굴에 들어가 도박꾼이나 창녀들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박꾼들이 찾아와 노름 자금을 달라고 막 떼를 쓰면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너는 위선자다. 저 사람에게 돈을 주면 가서 다시 도박을 하게 될 것이다”하며 비판하였습니다. 그 때 가가와는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 같이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넘어지면 일으켜 주지 않느냐? 의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또 놓지 않느냐? 넘어지거나 또 아플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끝까지 믿어주고 참는 것이 사랑이 아니냐?” 가가와의 관점은 이것이었습니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 속는 걸 알면서도 믿어주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알고 나면 이용하려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기 때문에 용서하십니다. 세상은 알면 만만하게 여겨 짓밟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면서도 자신의 몸을 희생하도록 십자가에 맡기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용서의 이유를 찾고 끝까지 믿으며 그들이 변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고린도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다른 선교지로 옮겨간 후에 고린도교회에서 은혜가 식기 시작했습니다. 분열과 파벌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잘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교인들 가운데 바울의 사도권과 그 자격까지 의심하는 말들도 돌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식으니까 서로 비판하고 다투고 잘났다고 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도 불신하고 믿지 못하였고 또한 같은 교인들에 대하여 참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여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의 말로 권면하고 또한 모든 상황을 긍정적이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어했습니다. 미움은 모든 관계를 끊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미움은 모든 해석을 악한 방향으로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해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읽는 것은 단순한 사랑에 대한 멋있는 시 낭송이 아닙니다. 처절한 영적 전쟁의 현장과 교회의 현장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면서 온 몸으로 깨닫게 된 영적 진리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워야지 왜 아군끼리, 형제 자매들끼리 싸웁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시들어가는 영혼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바로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계속 믿고 그들의 변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국 런던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아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구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서도 그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런던 시내 거리를 쏘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한 교회에 무심코 들어가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모트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구 공장의 직공에서 사장님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뜨거운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연필을 들고 적어내려 갔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는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부르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하고 참된 소망이십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 안에서 그 사랑으로 계속 기대하며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난 당신을 완성품으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 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가능성의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도 “넌 틀렸어. 너에겐 아무런 희망이 하나도 없어. 넌 망한 사람이야” 하고 포기하면 그 순간에 사랑은 정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 대신에 “넌 할 수 있어 넌 달라질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이건 사랑 안에서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기대감과 하나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사랑은 이렇게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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