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등불을 다시 켜라

어느 부부가 남편은 장님이고 부인은 정상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밤에 급한 볼 일이 생겨서 나갔다 와야 하는데 부인이 남편에게 등을 준비해서 손에 들려주면서 이 등불을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남편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밤이나 낮이나 똑같아요. 낮에도 눈 감고 다니고 밤에도 눈 감고 다니는데 등불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러니까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에게는 등불이 필요 없겠지만 밤에 걸어오는 사람이 당신이 손에 든 등불을 못보면 당신과 부딪힐 수 있어요. 자전거도 당신을 칠 수 있고 또 자동차도 당신을 칠 수 있어요. 그러므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등불을 들고 가세요.” 그래서 이 시각 장애자 남편은 부인이 들려준 등불을 들고 길을 걸어가는데 한참 가다가 어떤 사람과 심하게 부딪혀서 등을 든 채로 넘어졌습니다. 그는 일어나며 고함을 치면서 “여보시오 눈이 있어요 없어요? 등불 들고 가는 나도 못보고 나와 부딪힙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이 웃으면서 “아, 당신 등불이 꺼져 있소”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꺼진 등불은 아무리 들고 가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성도들의 영혼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등불을 다시 켜야만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 교회가 에베소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교회에 사랑의 등불이 껴져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에베소교회가 처음부터 사랑의 등불이 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처음 갔을 때 12제자를 만났고 성령의 세례를 줌으로 개척하였습니다(행 19:1-6). 바울은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세워서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고 그 곳에서 3년 정도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에는 사랑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고 봉사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디모데, 사도 요한 등 뛰어난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말씀을 배우고 양육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위해 인내하며 수고하고 말씀을 배우고 분별하며 게으르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계 2:2,3,6).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첫 사랑은 복음을 들었을 때의 감격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입니다. 회개하고 기뻐하면서 기도하고 찬송했던 성령의 뜨거운 체험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게 되고 교리와 신학에 매이게 되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직분자들은 권위 의식을 갖게 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기도나 찬송을 하면서도 별 감격이 없습니다. 예배 시간은 엄숙하게 지켜지고 십일조나 헌물도 잘하고 하지만 뜨거움은 사라지게 되고 사랑의 감격도 사라집니다.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이 됩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마음이 교만하거나 게을러졌기 때문이며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식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처음의 감격과 결단과 열심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의 결심, 직분자로 세움받을 때의 그 결심, 사명자로 부름받을 때의 그결심과 감격을 잊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모든 일을 행하면 어떤 것도 힘이 들지 않고 즐겁습니다(고전 16:14). 똑같은 꽃을 만들더라도 사랑하는 애인에게 주기 위해 만드는 경우와 먹고 살기 위해서 만드는 경우는 다릅니다. 사랑이 없는 예배는 지루하고 설교나 찬송도 길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사랑이 없는 봉사는 맥이 빠지고 힘듭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디서 떨어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권면하십니다(계 2:5). 언제부터 주님의 복음과 사랑에 대한 감격을 잃어버렸는가 그 원인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에 교만이나 자기 의가 들어왔을 수 있습니다. 마귀가 와서 마음 속에 또 게으름의 가라지를 심었을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나 친구들이나 교인들이나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그것을 치료하지 않아서 마음이 괴롭고 화가 나서 침체되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원인을 생각하고 다시 돌이켜야 합니다. 언제부터 내가 형식적인 믿음 생활을 해 왔나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정통 신학과 바른 말씀의 선포가 있다 하더라도 교만하여 사랑이 없고 냉랭한 교회보다는 비록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지식은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며 서로 사랑하는 교회를 더 좋아하십니다. 우린 초신자의 마음으로 돌아감으로 헌 신자(old-timer)가 아니라 헌신자(dedicated Christian)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축복의 비결이며 사랑하지 않는 것이 저주의 이유임을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여러분 모두 주님과 교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등불을 다시 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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