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잔인한 고통

유대인들에게는 나무에 달려 죽게 하는 사형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목을 매달아서 한 순간에 죽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사형법을 쓰는 경우는 자기 부모를 죽였거나 하는 중죄를 지었을 때였습니다. 사람을 산 채로 나무에 못 박아 죽이는 십자가 처형 방법은 고대 앗시리아, 페니키아, 애굽 등에서 시행하고 있었는데 카르타고인들이 그리스와 로마에 전수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피정복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십자가형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유대 문헌에 보면 하루에 2천 명이나 되는 반란군들이 십자가형을 받아서 길가에 매달려있었다는 역사적인 기술도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가능하면 오랫동안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겪도록 고안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 우선 예수님은 쇠나 뼈 조각이 붙은 가죽 채찍으로 39대의 매를 맞았습니다. 몸에 짝짝 들어붙도록 물에 적셔서 때리는 데에다가 쇠 조각들이 몸에 박혔다가 빠져 나오면서 살점이 터져 나오고 피가 흐르게 됩니다. 십자가형은 이렇게 먼저 몸에 채찍질을 하고 상처를 내어서 몸에서부터 물과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도록 만듭니다. 물과 피가 빠져나가면 사람은 정신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그 상황에서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을 쬐는 사형수는 결국 그 열기와 갈증과 고통에 의해 서서히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게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던 사람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물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로마 군병들은 물을 공급해주는데, 이것은 선한 의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더 오랫동안 살아서 고통을 겪게 하기 위한 잔인한 의도였습니다. 사형수들이 물을 요구할 때 로마 군인들은 일반적인 물을 제공하지 않고 쓸개즙을 탄 음료를 줍니다. 이것은 짐승의 쓸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일반 야생 식물 가운데 ‘로쉬’라는 독초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로쉬라는 독초를 짓이겨 짜내면 진녹색의 즙이 나오는데, 아주 쓴 맛을 냅니다. 십자가의 사형수들은 이 독초의 즙을 탄 물이나 포도주를 마시게 되는데, 마실 경우에 구토 증세를 유발합니다. 그러면 나무에 박혀있던 그 몸은 더 흔들리게 되고 살가죽은 더 찢어지게 됩니다. 구토를 하니까 몸에 그나마 남아있던 수분도 더 배출이 됩니다. 이렇게 고통을 겪고 나면 더 이상 목마르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도 쓸개 탄 포도주를 드시고 더 이상 마시고자 아니하셨습니다(마 27:34).

또 십자가형을 당할 때에는 몸이 앞으로 기울여져서 기도가 막히게 않도록 어깨와 팔꿈치 사이를 끈으로 동여매고 엉덩이 받침대도 제공이 됩니다. 십자가에 못박을 때는 양 손바닥에 그리고 엇비스듬하게 교차해서 묶은 발목에다가 큰 대못을 박았습니다. 산소는 결핍되기 시작하고 머리는 아주 빠개질 듯이 아픕니다. 이렇게 갖은 고통을 당하면서 숨을 연장하는데 보통은 3일, 심지어는 6일 동안이나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살아있으면서도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끔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3일을 계신 것이 아니라 오전 9시에 처형을 당하셨는데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채찍에 너무 많이 맞았고 또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죽게 하기 위하여 보통 양쪽 무릎도 망치로 쳐서 부수어버리는데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으므로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골고다’라는 말은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예수님 당시에 사용되었던 유대인들의 말이었습니다. 골고다란 말의 뜻은 “해골의 장소”란 의미입니다. 골고다를 로마 라틴어로는 갈보리라고 부릅니다. 많은 뼈와 해골들이 거기에 있었기에 “해골의 장소”란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곳은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의 제 2성벽 밖에 위치했던 지역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당시에 로마 총독 빌라도의 죄와 유대 지도자들과 유대 군중들의 죄의 합작품입니다. 빌라도의 탐욕의 죄,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의 죄, 유대 군중들의 무지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인류의 죄성과 죄악을 대표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름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움과 치유와 평화와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사 53:5-6). 그러므로 우린 평생 주님의 대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늘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주님께 대한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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