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대 요셉의 헌신 (The Dedication of Arimathea Joseph)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요 존귀한 공회원이었습니다(마 27:57; 막 15:43). 아리마대란 말의 뜻은 “높이 있다”는 의미인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북쪽으로 약 3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거나 동조했다가 출교가 될 수도 있고, 재산을 빼앗길 수도 있으며, 공회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그 제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숨기고 살았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유대인이 두려워서”라고 명백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요 19:38).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혔을 때 받을 불이익이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자세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게 되자 그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막 15:43). 이제 공개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믿음에 대하여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부끄러워하면 주님도 우릴 부끄러워하시고 우리가 주님을 자랑하면 주님도 우리를 자랑하게 되실 것입니다(마 10:32-33).

그럼 아리마대 요셉이 공개적으로 믿음을 표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진리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아니라고 도망가고, 심지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외면을 한 상황인데도, 그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빌라도에게 당돌히 나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합니다. 여기서 “당돌히”라는 말은 “담대하고 용감하게”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을 담대하게 먹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담대할 때 상급이 있습니다(히 10:35). 그가 이렇게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막 15:43).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린다는 표현은 구원의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한 더 강력한 신앙의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고대하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자신의 부도, 자신의 권력도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께 대한 그의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다 더러워서, 귀찮아서, 또 두려워서 그 시체를 피하는 상황에서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었습니다(막 15:46). 그 무덤이 누구의 무덤입니까? 바로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이었습니다(마 27:60). 아직 아무도 사용한 일이 없는 완전 새로운 무덤입니다. 비싸고 좋은 무덤입니다. 당시 서민들은 누군가가 사용한 무덤을 다시 잘 정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 관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자신의 새 무덤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구약에서 강조하는 제물 드림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첫 번째 것입니다. 또 새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에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상의 것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앞에서 우리가 조금의 물질을 드린들 그것이 얼마나 보답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헌신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시 110:3).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새 무덤을 주님께 헌신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저 이름 없는 무덤이었을 그곳이 바로 인류를 구속하는 찬란한 부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사용했다면 그저 하나의 무덤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헌신한 무덤이 구속의 역사에 빛나는 부활의 생생한 현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실현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하여 이사야 53장 9절의 예언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죽음)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이 사건이 있기 약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사명자로 쓰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아리마대 요셉처럼 살아계신 예수님을 날마다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을 이루어가는 헌신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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