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염려와 씨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염려의 문제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게 되고 육체적으로도 병이 들 수 있습니다. 염려와 불안이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위궤양과 소화 불량, 신경 쇠약, 두통, 피부 발진, 불면증과 피곤함을 가져다주고 혈압도 높이고 성격을 조급하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몸이 아픈 것 같아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병원에 왜 왔느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분에게 신체적인 질병은 직접적으론 없는데 뭔가 아픈 느낌, 병에 걸린 느낌,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병으로 <건강 염려 증후군>이라고도 말합니다. 건강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인생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문제 앞에서 우리가 염려의 습관을 가지게 된다면 마음에 병이 되어서 육체적이고 영적인 건강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염려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 염려와 근심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 안에 있지 않을 때 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 틈을 타서 사탄이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 근심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복도 아닙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저녁 식사를 끝나면 새를 위해 먹이를 가지고 새장을 찾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루터가 오면 새는 좋아서 퍼덕거리며 장대 위로 날아와 앉습니다. 먹이를 주면 정신없이 열심히 먹고, 주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지저귀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그 새가 어느 순간 머리를 날개 죽지에 파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루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다 먹이시고 입히신다. 내 앞에 염려와 걱정이 많지만, 나보다 못한 저 미물인 새도 염려하지 않고 깊이 잠드는데 내가 왜 잠을 못하고 고민을 하는가?” 그 후에 루터는 잡다한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종교 개혁의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들의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마 6:2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짜 은혜가 의외로 작아 보이는 일상 생활이나 평범함 속에 숨겨져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먹는 문제로 염려를 많이 하는데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가 아닙니다. 밥은 40일을 안 먹어도 살 수 있고 물은 4일을 안 먹어야 죽게 되지만 공기는 4분만 마시지 못해도 죽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에 제일 중요한 것이 공기입니다. 이 공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와이에는 비가 자주 오고 더러운 것들이 자주 씻겨내려서 얼마가 공기가 좋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 공기의 은혜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똑똑하고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처음과 끝은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매일 매일 하루의 아침과 밤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니 젤린스키라는 분이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란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기 하는 염려의 30%는 이미 과거에 지나간 일에 대한 염려이고, 염려의 40%는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하는 것이고, 22%는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염려하는 것이고(예를 들어,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등), 실제로 염려해야 할 염려는 4%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는 염려의 96%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갈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염려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 밭을 가시떨기와 같이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결실을 맺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막 4:18). 그래서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하루 한 번씩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염려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염려 앞에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이길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빌 4:6-7).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십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시 68:19). 날마다 염려하는 나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어떤 일에도 염려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로 승리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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