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욥 5:7). 예수님도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것은 보통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난이 있습니다. 사실 성육신 자체가 고난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돼지나 개미가 되어보라고 한다면 원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동물의 구유에서 아가의 몸으로 탄생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가난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고 나서 남동생 4명, 여동생 2명, 어머니 마리아 등 많은 부양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목수 집안의 가장으로 경제적인 압력을 받으셨습니다(막 6:3).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집 한 채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셨습니다(눅 9:58).

예수님은 또 멸시 천대 핍박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또 고향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셨습니다(막 3:21; 눅 4:16~). 유대의 권력자들로부터도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배신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며 영적, 육체적 양식을 먹던 군중들이 나중에는 배신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였습니다.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가 되었고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일 큰 정신적 고통 가운데에 1위가 바로 가까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인간적인 배신의 고통을 철저하게 느끼고 당하신 분이십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형벌은 심한 채찍으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금속/유리 조각을 끼워넣은 채찍으로 예수님의 살점이 터지고 온 몸에 피가 흘렀습니다. 가시로 만든 면류관으로 머리에서도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보통 135kg인데 너무 무거워서 죄수는 횡목만(45kg)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골고다(갈보리) 언덕에서 약 15cm의 철못으로 예수님 손목과 발목에 대못을 박았고 주님은 피흘림과 산소 결핍으로 머리와 온 몸에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오전 9시에 처형되어 오후 3시까지 6시간 만에 빨리 운명하셨는데 이것은 너무나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 십자가 위에서 속옷 제비뽑기로 발가벗기우게 되는 정신적 수치도 당하셨습니다(요 19:24). 또 구약 율법에 나무 아래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적인 저주도 담당하셨습니다(신 21:22-23; 마 27:46).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모든 고난을 겪으셔야 한 것일까요? 그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먼저 인간의 죄사함과 구속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예수님은 나를 대신하여(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는 성화(聖畵)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시면서 처형당하는 모습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마리아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서서 울고 있거나 탄식하거나 두려워하는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가운데 그림 한쪽 구석을 보면 렘브란트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 그림에 대하여 렘브란트는 그 현장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또 복종과 겸손의 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 아들이시지만 고난으로 인하여 순종을 배우셨다고 합니다(히 5:8). 자아가 강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는 고난을 통해서만 깨어지고 겸손하게 됩니다. 위대한 바울도 육체의 가시의 고통이 있었는데 그것은 영적으로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고후 12:7). 마지막으로 우리의 위로와 도움을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난과 고통과 연약함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체휼하실 수 있습니다(히 4:15).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영적인 큰 형님이신(히 2:11) 예수님께 나아가 위로와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모든 고통이 사라집니다(찬 138장 후렴). 천국 문은 입구가 열두 진주 문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고난을 통과하는 자만이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됨을 시사해줍니다(롬 8:17).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묵상하여 항상 감사하면서 여러분이 당하는 모든 고난도 믿음과 기도로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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