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의 몸

초대 교회 때에는 예수님의 부활과 그 의미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이나 궁금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 “만약 살아나게 된다면 어떤 몸으로 살아나게 되느냐?” 등의 질문을 하였습니다(고전 15:35).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이미 성경에 예언된 것이며(고전 15:3-4), 또 수많은 제자들의 체험과 증언이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15:5-8). 그런데 바울은 또한 자연계의 원리를 설명하며 부활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씨를 심으면 그것은 죽어 부패합니다. 그러나 그 죽어서 썩은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됩니다. 죽음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도 없기에 자연계에서도 부활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원리라는 것입니다(고전 15:36-38; 요 12:24). 하나님은 또 이 세상에 사람,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 등 다양한 육체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고전 15:39). 그러면서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다고 말합니다(고전 15:40). 각자 환경에 맞게 육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내세나 천국의 세계에 필요한 몸도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또 예수님의 부활이 영혼만의 부활이 아니라 실제 몸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성도들도 영혼 뿐 아니라 몸도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현세의 육의 몸은 썩을 몸이요 욕된 몸이요 약한 몸이지만 부활의 신령한 몸은 썩지 아니하는 몸이요 강한 몸이요 영광의 몸이라는 것입니다(고전 15:42-44).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성도들이 입게 될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우리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추측해볼 수는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은 도마가 만진 것처럼 만져볼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요 20:27). 주님의 부활의 몸은 또 음식을 잡수실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디베랴 바다에서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로 떡과 생선을 함께 드셨습니다(요 21:13). 예수님의 부활의 신령한 몸은 또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부활 후에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걸어가시고 대화하시고 식사하시고 동행하신 후에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눅 24:31).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성도들에게 그 몸은 현세의 몸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는 몸입니다(고전 15:42-44). 그러므로 이생에서 알던 자들(모습)도 부활 후에도 다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부활의 몸은 더 이상 늙는 것과 죄와 죽음과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계 21:4).

바울은 혈과 육은 첫째 아담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부활의 몸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고전 15:50). 그런데 주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인류에게 부활을 선물하셨다고 합니다(고전 15:20). 첫째 아담은 흙에 속한 자이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이므로 신령한 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고전 15:45-49). 성도들의 부활의 몸에는 각기 다 그 영광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부활의 몸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영광의 얼굴이었습니다(계 1:16). 나중에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신령한 몸의 영광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햇빛, 어떤 사람은 달빛, 또 어떤 사람은 별빛과 같다고 하는데 그 빛의 종류와 강도가 다 다르다고 합니다(고전 15:40-41). 천국에서의 집과 영광은 이 땅에서의 믿음의 삶으로 좌우가 되는데, 이전에 천국을 체험했던 한 목사님은 그 삶이 바로 예배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 십일조와 헌금 생활, 봉사 생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도 생활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천국의 영광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바로 전도 생활이라고 합니다(단 12:2-3).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도 부활의 영광의 몸과 영생 천국을 소유하게 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이요 축복입니다. 이제 죽음 후에 하나님의 천국 지옥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지 말고 영원한 천국의 삶을 바라보며 거룩함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고 또 우리의 육신이 연약해지거나 병들거나 늙어가게 된다 하더라도 이제 머지 많아 영원히 썩지 않게 되는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의 몸을 선물 받게 될 것을 고대하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빛나는 천국의 상급과 영광을 위해서 더욱 더 열심히 예배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주님의 사명에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고전 15:57-58).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Praise the risen Lord)!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1 Comment

  1. 윤희균

    제가 예수님의 부활의 몸에 대해 궁금해서 찾다가 홍목사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두가지 정도 의문이 있는데 혹시 목사님께서 답변하시기 곤란하시면
    관련 정보를 찾을 만한 곳을 알려주시기만 해도 많이 감사하겠습니다.
    정체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간을 사용하는게 부담스러우시다면
    그냥 무시하셔도 됩니다. 저 역시 이런 의문과 질문이 답변자를 당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의문과 질문은 두가지입니다

    도마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몸은 상처의 흔적이 그대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유추하면 예수님이 부활전의 몸이 부활의 주 재료로 사용되었다는 걸 의미할 것입니다
    이런 묘사는 무덤 문이 열려있었고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몸의 부활이 앞으로 성도의 부활에서도 적용될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
    심각한 과학적 모순에 이르게 됩니다.
    한번 죽은 육체는 부패하고 결국은 자연 속으로 돌아갑니다. 그 자연 속에서 식물이 자랄 것이고
    그 식물은 다른 동물(곤충, 초식동물 등)의 먹이가 되고 그 동물들은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됩니다
    즉 우리 몸의 구성원소로 따지면 우리 몸엔 이미 다른 사람 몸이 들어가 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진 첫번째 의문이 무엇인지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몸의 부활에 대해 좀더 생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의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한 몸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일 것입니다. C.S.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히 새로운 종의 존재 방식이 생긴 것이고 예수님이 그 역사적인 첫발을 보여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죽은 우리는 예수님이 예비해 놓은 곳 즉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몸을 받아 존재할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서술하신 것 처럼 예수님의 몸은 인간으로서의 육체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부활한 성도의 몸은 예수님의 몸처럼 그렇게 재창조 또는 변형될 것이라는 소망을 생각하면
    그보다 벅찬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의문은 새 몸은 시공간을 초월하였다는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즉 문이 닫혔어도 그런 공간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점은 참 통쾌하지만
    성경의 내용과 뭔가 서로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같은 것을 느낍니다.
    즉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부활한 몸이 시공간을 추월한다면 왜 무덤문이 열려있을 필요가 있었을까?
    또는 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논리적인 의문이라해서 그게 신앙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이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설득적인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아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긴 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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