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부활로 우리는 승리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주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죽음의 독침은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혀 왔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며 죄로 마귀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6:23). 자신이 떳떳하게 살았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사람이 없겠지만, 그러나 떳떳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계속 죄를 짓고 살아왔습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교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창조주 하나님이 안 계시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무신론자가 자신의 주장을 선전하기 위해서 자기 집 지붕 위에다 이런 간판을 붙였습니다. “God is nowhere.” 하나님은 아무데도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글자색이 바래기 시작했습니다. 맨 끝에 있는 here라는 글자가 희미해지면서 그 앞의 단어 now가 차별화되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중에 보니 간판에 이렇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God is now here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계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인간이 짓는 모든 행위를 선악간에 다 감찰하고 계십니다.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에 인간의 죄를 속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 경찰관에게 걸리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과속하셨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운전사는 자기도 모르게 “아유 술 한 잔을 했더니 정신이 없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교통 경찰관은 “음주 운전죄를 추가하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아내가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게 무면허라서 운전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이 사람은 맨 정신에는 겁이 나서 운전을 못 해요.” 경찰관은 하도 기가 막혀서 “무면허 운전죄를 추가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뒤에 앉아 있던 장모가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거봐라 거봐. 자동차를 훔쳐 타더니 오래 못 가지 않니?” 이 말을 들은 경찰관이 “나 참, 자동차 절도죄로 체포하겠습니다.”하고 그 자리에서 붙잡아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 둘 씩 들쳐내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영원한 죽음과 고통인 지옥의 심판을 피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고전 15:57).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도, 우리의 믿음도 다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고전 15:14).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은데 부활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사면권이 있습니다. 중형을 선고받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죄를 사해 주는 권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대사면령을 내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인간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지금까지 죄 가운데 빠진 인간을 노예로 부리던 사단은 그 합법적인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18). 주님이 산 자라는 말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자임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때 예루살렘 왕은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과 수리아 때문에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두 나라의 왕은 연맹을 맺고 연합하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타다만 부지깽이 나무와 같다.”(사 7;4). 타다만 부지갱이 나무는 타는 연기는 나지만, 그대로 두면 사라져 없어지게 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악과 사망과 질병과 고통은 저절로 사라지게 되며 우리 성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의 죽은 몸은 다 영생의 불멸하는 몸으로 부활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당시에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몸의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5장 36절 이하에서 씨앗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씨를 심어서 열매를 맺게 되는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몸의 부활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고전 6:19).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고 살아있는 자들은 그 뒤를 따라서 모두 다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을 따라서 모든 성도들이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무런 죄와 눈물과 고통과 슬픔도 없는 천국을 유산으로 상속받고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계 21:4).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우리는 주님과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며 복음전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 신앙이 있는 자라면 더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에 더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우리는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행 3:15)을 마음에 모시고 모든 죄와 사망과 질병과 저주와 고통의 사슬을 깨뜨리고 항상 승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찬송가 155장 후렴엔 이런 찬송 가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담대하게 선포하고 외쳐야 합니다.

죄와 모든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난 너에게 승리하였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난 너에게 승리하였다!
내 몸과 마음의 모든 질병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난 너에게 승리하였다!
내 인생의 모든 저주야,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난 너에게 승리하였다!
예수님 부활, 내 부활. 예수님 생명, 내 생명.
예수님 부활로 난 이제 승리자가 되었다!
부활 영생 천국을 가지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께 영원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예수님 부활로 여러분은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항상 승리하면서 그 모든 행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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