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자

모든 성도들은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성도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광도 결정이 됩니다(cf. 고전 15:41). 마르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십자가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도 없기 때문입니다(no cross, no crown). 그런데 성도들이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격은 다릅니다. 예수님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우린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자격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자신의 탐욕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옛 사람의 모습을 그 정과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님의 사람들입니다(갈 5:24).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기 위함입니다(롬 6:6). 예수님을 믿으면서 모든 좋은 혜택은 다 받고 모든 축복은 다 누리려고 하지만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그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죄의 편이 아니라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죄에 대하여) 죽노라”고 말한 것입니다(고전 15:31).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또 주님과 주님의 사명을 위하여 겪는 모든 희생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형)벌을 받는 것은 자기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돈과 권력과 범죄를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테러 조직이나 조폭 단체 등도 가입을 할 때 목숨을 내건 순종과 충성을 요구합니다. 하물며 영생과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 사명을 위해서도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행 20:24)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 공부, 사랑, 전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했다고 합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고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나는 예배한다”라고 소리치며 순교했고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에 맞고 쓰러진 후 목 베임을 당했고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고 합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고 사도 요한은 백세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 있는 순교자였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위하여 추방과 비웃음과 돌팔매질과 감옥과 배고픔 등 숱한 어려움을 감당하였습니다(고후 11:23-27).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제자들과 같이 주님을 위한 희생과 순교의 정신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고통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한 작은 고통도 힘들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편하게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가 믿음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고난도 받도록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빌 1:29). 독일의 진젠돌프 백작이 어느 날 미술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그림을 보다가 성령의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피가 너무 생생하였는데 독일의 스텐버그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아래에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흘려 주었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주느냐?”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 백작은 회개를 하였고 자신의 영지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하여 경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10가정마다 선교사를 1명씩 보내게 하여 모두 50명의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선교 운동이 모라비안파 교회의 모태가 되었고 근대 선교의 위대한 시작이 되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짊어져야만 생명의 역사가 나를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새벽기도, 헌금, 봉사, 전도 등이 다 십자가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탐욕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쓰는 모든 수고와 희생이 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됩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로마 사람들이 주문하는 십자가도 만드는 전문 목수였다고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게 되신 예수님도 오늘날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십니다. 주님은 여러분 각자에게 맞게 십자가를 만들어 주십니다. 그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시기 바랍니다. 오우그스는 “십자가는 끌고 가는 것보다는 지는 것이 가볍다”고 말했습니다. 마지 못해 또 편하게만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자발적으로 또 기쁨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믿음 생활을 하심으로 천국의 큰 영광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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