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죽는 것이 슬픔이지만 성경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전 7:1)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태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잘 죽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잘 죽는다는 것이 천만 원짜리 비싸고 멋있는 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잘 살아야 그 죽음이 의미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더 낫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다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마 14:1-13). 그는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롯 안티바스(Herod Antipas)에 의하여 목이 참수가 되어 죽었습니다. 헤롯 왕은 로마 황제가 임명한 왕이었기에 분봉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헤롯 대제의 영토를 통치하도록 임명 받았던 3명의 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2장에 등장했던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던 헤롯 아켈라오스(Herod Archelaos)의 친동생으로 헤롯의 후계자들 가운데 가장 영악한 자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형인 헤롯 아켈라오스가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치하였다면,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 서부의 넓은 지역과 베레아 지역을 기원전 4년부터 주후 39년까지 약 43년 동안 오래 통치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유다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에서 태어났고 말씀을 전한 곳도 바로 유다 광야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갈릴리에서 체포되어 갈릴리 왕에게 처형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원래 유다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은 갈릴리 사람들도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여 그들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헤롯 왕이 자기 부인을 버리고 동생의 부인과 눈이 맞아서 사는 것을 보고 요한은 그를 책망하기 위하여 갈릴리로 간 것 같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그저 미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였고 또 그의 설교를 들을 때에 번민도 느꼈습니다(막 6:20). 그러나 헤롯은 설교를 객관적으로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를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살로메는 헤로디아와 헤롯 빌립 사이에서 난 딸인데 헤롯 안티바스의 생일 잔치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헤롯이 술에 취하고 기분이 좋아지자 그녀의 소원을 무엇이든지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아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달라고 간청하게 됩니다(마 14:8). 이러한 요구는 헤롯 안티바스의 잔치석상에 앉아 있는 유대 고위 관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신 14:1). 비록 헤로디아가 에돔 족속에서 유대인으로 개종한 헤롯 가문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현재 그녀는 유대인들을 통치하는 왕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볼 때 헤로디아는 자신과 헤롯 왕과의 관계를 비난하고 경고한 세례 요한을 원수처럼 생각하였고, 그래서 앙심을 품고 그 시체를 훼손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너무 허무하고 비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진리를 위해 살았기에 왕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의 왕보다 더 위대하신 만왕의 왕 하나님을 더 의지하였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그는 왕이라 할지라도 회개해야 할 한 사람의 죄인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도 바로 진리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또 죽게 되었는데도 예수님은 그를 건져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요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분노 가운데 헤롯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조용하게 들판으로 피신하셨습니다(마 14:13). 그것은 요한의 사명과 예수님의 사명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사명은 죄를 책망해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께로 나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종을 비참하게 죽인 헤롯에게 복수하지 않고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각자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969세까지 산 므두셀라는 그 이름의 의미가 바로 사명을 담고 있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입니다. 그의 이름 그대로, 므두셀라가 죽은 뒤, 노아 시대에 홍수의 심판이 왔습니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긴 969세까지 산 이유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 때 세상 욕심만을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세례 요한처럼 사명을 따라 살고 죽을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세례 요한처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잘 죽어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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