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가난은 우리의 부요를 위함이다

최근에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어 18억 원을 받은 한국의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돈을 받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나섰으나 실패하였고 사기 피해와 주식 투자 실패 등으로 당첨금을 모두 탕진하였다고 합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친ㆍ인척에게 돈을 빌려 수천만 원의 빚을 안게 되었고 부인과 두 자녀와도 별거하여 생활해오다가 신병을 비관하여 목욕탕 안에서 목을 매서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돈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마음의 부자 믿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난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물질적으로 진짜 가난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여우는 굴이 있고 공중의 새는 거처가 있어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마 8:20). 주님은 집 한 채 자기 소유가 없이 떠돌아다니시면서 전도 사역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홈리스가 아니라 월세이든 자가이든 어떤 집에서 살고 있고 매일 먹고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물질적으로 예수님보다 부자인 셈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갈 때 여벌의 옷이나 돈지갑 같은 것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믿으면서 살고 먹고 사는 문제에 걱정하지 말고 복음 전도에만 집중하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가난하게 사신 것은 돈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이 학교 공부도 많이 하지 않으신 것은 학문으로 사람 영혼을 구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원래 주님은 부요하신 자였습니다. 우주의 최고 부자이셨고 보이는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이 땅에 동물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목수로 노동을 하셨으며 가난하게 살면서 복음 전도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인간의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자식을 사랑하여 먹을 것을 미리 챙겨주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먹고 사는 걱정이 없이 살도록 모든 땅과 물질과 자원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계명에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와 저주를 대신하기 위하여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가난과 고난을 몸소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그 은혜를 깨닫는 자는 진짜로 부요한 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물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고후 8:9). 주님은 가난과 고난을 몸소 겪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 매여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몸소 삶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음식이 없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가 있습니까? 당장 내일 잘 곳이 없는데 감사할 수가 있습니까? 지금 몸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아파하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가난해지심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극한 가난 가운데에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학교 공부를 많이 못하셨어도 열등감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셨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죽인 자들을 증오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만약 주님이 먹을 것이 없다고 환경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였다면 또 자신을 배척한 사람들을 미워했다면 마귀가 승리하였을 것이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이 낮아지신 것,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과 부요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부요한 자가 된 성도들은 “나는 가난하다”는 의식을 지워버리고 “나는 부자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부요의 자화상과 부요 의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생과 내세에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딤전 6:6). 그리고 부요 의식 가운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물질, 시간, 재능, 건강, 복음 등)을 나누며 사는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고후 8:10-11; 눅 6:38). 영혼이 잘되면 범사도 잘되고 물질과 건강의 복도 오게 되어 있습니다(요삼 2). 주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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