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눈물병 (The Tears Bottle of the Lord)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다윗도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히 5:7; 행 20:37; 시 6:6). 시편 56편에 보면 다윗이 주님의 눈물병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시편 56편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힌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으로 쫓겨다니면서 유리하고 방황하다가 불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매를 맞으며 두려워하는 가운데에도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이 시를 기록하였습니다. 주님이 다윗의 유리함을 계수하셨다는 것은 다윗의 눈물과 고통 하나 하나를 다 세시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요. 다윗은 성령의 광야 대학교에서 고생과를 다니면서 학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의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의 샘물을 터뜨리시고 단비를 내려주십니다(시 84:6).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눈물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을 받아두는 풍속이었는데, 이를 위하여 여러 가지 모양의 눈물병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눈물병은 주로 얇은 유리로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작은 것은 7~8cm에서 큰 것은 20cm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눈물병의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토기로 만든 눈물병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눈물병은 가족 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에 예기치 않았던 재난이 생겼을 때나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얼른 자기 눈 아래에 눈물병을 가져다 대고는 흐르는 눈물을 그 병에 담아 두었습니다. 당시엔 이 눈물병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여겨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게 되면 눈물병을 그 사람과 함께 매장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눈물 병을 깨뜨렸거나, 모아두었던 눈물을 쏟게 되어서 장례식 때 함께 매장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큰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눈물병과 같은 풍속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담아두시는 눈물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흘리는 고통과 괴로움의 눈물을 담으시고 보존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환난과 고통의 순간에 “나는 혼자이구나” 하고 느끼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보살피고 계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먹이십니다: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시 80:5). 쇼펜하우어는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아니한 마음으로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픔을 겪지 못하고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눈물이 메마른 가슴으로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고통을 위로해주고 치유해줍니다. 눈물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 양파를 썰 때 나오는 생리 작용적인 눈물과 달리, 감정이 작동되어서 흘리는 눈물 속에는 체내에서 빠져나온 독소들이 다량 검출된다고 합니다. 즉 눈물이 우리 안의 독소를 제거해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접할 때 괴로움으로 흘리는 눈물이 심신의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해 독소들을 배출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물은 이렇게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눈물은 이율배반적입니다. 가장 슬픈 일은 가장 기쁜 일과 깊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 표현의 통로 중에 최고가 바로 눈물입니다. 슬픈 일을 당해서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은 슬픔을 정화시켜줍니다. 마음의 상처와 무거움에 비상 탈출구를 열어주는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기쁨과 감격으로 인해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은 그 감격을 오래 지속시켜주는 눈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되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의 눈물도 다 보고 계십니다(사 38:5; 욥 16:20). 우리의 고통과 기도의 눈물은 천국의 생명책에 다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시 56:8). 우리는 또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눅 23:28). 주님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눅 6:21). 눈물의 가치는 누구를 위해 울며, 무엇을 위해 울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히브리 잠언에 보면 “천국의 한 모퉁이는 기도할 순 없어도 울 수는 있는 사람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눈물과 정화된 마음과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 줍니다. 다윗의 기도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다 씻겨주실 것입니다(계 21:4; 7:17). 저와 여러분의 눈물이 하늘의 다이아몬드로 천국에서 영롱하게 빛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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