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만 사랑하지 말라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죄는 바로 사랑하지 않는 죄입니다. 성경 최고의 헌법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만과 불신앙, 미움과 다툼, 도둑질, 거짓말, 살인 등 모든 죄는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43). 그러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최고의 비법은 바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게으르게 살면서 자식에게 근면하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도박이나 노름을 하면서 자식에게 직장이나 사업이나 일에 성실하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시는데 이것은 실로 하나님 자신이 보여주신 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주요 방법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 현상을 통해서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이며, 마지막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믿는 성도들을 통해서입니다.

먼저 자연 현상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태양빛을 보십시오. 사람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내려쬡니다. 또 비를 보십시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내려줍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죄만 짓는 나쁜 인간들에게는 햇빛이나 비도 내리지 않게 할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또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 심지어 원수 사랑의 모델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원수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습니다(엡 2:16).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루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 판화로 완성한 바 있습니다. 그는 작품마다 특이한 제목을 붙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중에서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치는 도끼에 향을 바른다>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발라 주는 삶,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 같은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믿는 성도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이 땅에 두신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그 자녀들을 통하여 보여주기 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햇빛과 비로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자녀들도 그대로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웃과 원수를 구분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살아간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사랑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십니다(마 5:48). 그러면서 성도들의 사랑이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47). 세상 사람들은 자신과 친한 사람끼리만 믿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세리도 이방인도 친한 사람은 사랑해줍니다. 나랑 친하지 않은 사람, 나와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지만 훈련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사랑을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자꾸 용서하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훈련하다가 보면 점점 사랑의 스케일이 커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식사를 대접할 때에도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을 청하라고 말합니다(눅 14:12~). 대접을 바라지 말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파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나에게 다시 대접하기 힘든 가난한 자들이나 불구자들을 대접하면 그 상급이 하늘에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베풀었을 때에 그 사랑을 도로 갚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사랑도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행을 하는 것이 그 사랑을 진정으로 갚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선 가까운 사람끼리 사랑한 것은 별로 상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원수를 한 명 사랑하면 친한 사람을 많이 사랑한 것보다 더 큰 상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만 가두어두면 고여서 썩은 물이 됩니다.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이 사랑의 물이 파도의 파장이 되어서 흘러 내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큰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