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성소에서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신다

신라 48대 경문왕 때의 설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경문왕이 왕이 되고 난 뒤에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감투와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 도림사의 한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그 뒤에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그런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수유 나무의 열매를 심게 했는데, 그 뒤로는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들어줄 귀를 찾지 못해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통입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말할 대상이 없으면 화병, 마음의 속병에 걸리고 맙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말을 들어주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시 5:1)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사람들의 귀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귀에 호소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들어봤자 뒤에서 흉만 보고 소문만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를 기울여서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고 해결해주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 나의 모든 답답함과 문제를 아뢰고 말함으로 맡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귀에 호소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호소하였습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시 5:7).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주님이 다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침에 내가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고 고백합니다. 언제 하나님의 귀에 호소하였나 보니까 바로 아침이었습니다. 이 아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캄으로서 이른 아침, 즉 새벽입니다. 왜 새벽이 중요합니까? 하루의 첫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감추인 것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아침의 태양 빛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어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삭을 바칠 때도 아침 일찍 출발하였습니다. 야곱도 돌베개를 베고 잔 후에 이른 아침에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집에서 이른 아침부터 기도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눅 21:38). 밤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아침에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슈퍼 옥수수 개발로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그리고 북한에서도 선교한 김순권 박사(장로)의 간증입니다. 2001년 19차 방북 때에 북한은 가뭄이 극심했다고 합니다. 북한 농업과학원 옥수수 연구원들이 “김 박사님, 제발 하나님께 기도해서 더도 말고 30mm의 비만이라도 오게 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옥수수 농사를 다 망치겠습니다” 라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 박사님은 나만 기도하는 것 보다 우리 다 함께 힘을 합해서 기도해야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함께 밭에서 무릎을 꿇고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기적적으로 12mm, 다음날 아침엔 18mm의 비, 모두 30mm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연구원들도 다 놀라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주님의 전에서 주님의 손에 올려놓으면 기적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보금자리인 하나님의 전에 나오면 참된 안식을 얻고 인생의 모든 문제와 짐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라고 말합니다. 고대 국가에서는 신전 안이나 경계에다가 새들이 집을 지으면 사람들이 좇아버리거나 죽일 수 없었다는 당시의 관례가 있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성전에 날아와 있는 참새와 제비도 부러워합니다. 새와 같은 미물도 성전에서 보금자리를 얻는다면 우리 인간은 하물며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전에 나올 때 주님은 어쩌다가가 아니라 매일 매순간 우리의 짐을 져주십니다(시 68:19). 또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주십니다(히 4:16). 그러므로 주님의 전에 나와서 경배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다 해결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의 말을 잘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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