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와 용서의 영성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만이 자신에게 잘못한 자들을 용서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예수님의 비유가 바로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입니다(마 18:23-35). 예수님은 몇 번을 용서해야 하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시며 이 비유를 드셨습니다.

일만 달란트란 얼마나 되는 액수입니까? 당시 화폐 단위로 일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입니다(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와 베뢰아 주민 전체가 로마 정부에 내는 세금이 200 달란트였고, 유대 전역에서 거두어들인 일 년 세금은 900 달란트 정도였다고 하니 1만 달란트란 얼마나 큰 액수였겠습니까? 이 돈은 노동자가 약 16,384년 동안 벌어야 갚을 수 있는 분량이고,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계산한다면 6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것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갚는 돈입니다. 그런데 왕이 이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탕감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왕이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마 18:27).

그런데 그 종이 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빚을 갚지 못하니까 고발하여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비유에서 빚은 죄를 말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죄라고 번역된 것도 정확한 뜻은 바로 빚을 의미합니다(마 6:12). 유대인들의 개념에서 죄는 하나님께 대한 빚이며, 이웃에 대한 빚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 즉 하나님께 대한 빚의 무게는 이렇게 많기에 도저히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는 갚거나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온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값없이 탕감해주시고 용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리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니라”(마 18:35).

용서의 영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깨달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어떤 분에게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다는 사실이 별로 실감나지 않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공짜로 누리고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태양빛 하나만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태양을 하나 만들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요? 일만 달란트의 수천 배가 있어도 안됩니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극히 일부만 지구에 오는데, 그것이 지구의 모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입니다. 늘 태양이 뜨고 지고 우리 곁에 있기에 우린 그걸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성의 차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일곱 번을 용서할 것인지, 사백구십 번을 용서할 것인지, 또는 무한정으로 용서할 것인지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용서의 영성을 숫자로 계량화하면 율법이 되고 맙니다. 용서의 영성이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는 데서부터 와야 합니다. 일상생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느껴야 합니다.

영어로 용서는 ‘forgive’인데, 이 말은 ‘위한다’라는 뜻의 ‘for’와 ‘준다’라는 뜻의 ‘give’의 합성어입니다. 또 ‘pardon’이라는 영어 단어도 쓰이는데 여기서 ‘don’, 이 말은 ‘donum’, 즉 ‘선물’이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pardon에는 “용서는 선물”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 죄를 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깨닫는 자만이 용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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