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아버지를 믿고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따라다니면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전도하고 사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일정한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22-23). 성도는 생계에 대한 염려도 초월해야 합니다. 주님은 염려란 이방인들의 삶이며 불신자의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31-32). 헬라어 원어로 ‘염려하다’라는 말은 ‘메림나오’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이 말은 ‘메리조’라는 동사에서 왔는데 그 뜻은 ‘나누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염려라는 말은 마음이 나뉘어진 상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대한 관심의 마음이 나뉘어져서 마음이 부서지고 갈라진 것입니다.

기우(杞憂)라는 말을 여러분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말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의 열자(列子)라는 책에 보면, 기원전 12세기에 기(杞)나라가 있었는데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나라는 주(周)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杞)나라는 당시 나라 잃은 유민들이 모여 살던 힘이 없고 작은 나라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늘 설움과 천대를 받았고, 다른 나라가 언제 공격해 올까 늘 불안해하고 염려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기나라 사람들은 염려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염려하고 걱정하는 바람에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던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걱정하는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땅이 꺼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쓸데없는 염려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 기우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실 때 크리스천의 염려도 아주 쓸데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걱정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이 나옵니다. 하루에 한 번씩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잠 10:22; 요 14:1):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33). 염려의 반대는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염려를 많이 하고 믿음이 있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죠지 물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 신앙이 끝난다. 하지만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 염려는 끝난다. 그리고 염려는 기도에 의해 제거된다”(cf. 빌 4:6-7).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믿으라고 말하십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눅 12:24). 하나님은 까마귀나 까마귀보다 못한 새들도 다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먹이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하여 먹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방법 대로 먹여주시고 입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들의 백합화를 생각해보라고 말하십니다(눅 12:27-28).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옷을 짜지도 않는데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람의 옷도 꽃의 색깔만큼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백합화는 화분 꽃도 아니고 정원의 꽃도 아닙니다. 혼자 숲과 들판에서 햇빛을 받으며, 비바람과 싸우며 피는 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입히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급을 기대해야지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해야만 합니다. 그들에겐 하늘의 아버지가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하늘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십니다(눅 12:3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염려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성품과 섭리를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뒤를 돌아보니까 수풀 속에 수양이 뿔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과 순종과 헌신으로 시험을 통과할 것을 아시고 미리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새해의 삶에도 풍성한 은혜와 복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도 “나는 너희가 다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고전 7:32)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하늘의 아버지를 믿고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Author || 홍영기 목사 (Rev. Ph.D. Joshua Hong)

교회성장과 리더십 전문가인 홍영기 목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의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건강한 교회성장을 돕고 컨설팅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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